'작은 흰 점'에 불과한 나…설원은 말없이 안아줬다

입력 2022-02-10 16:42   수정 2022-02-11 02:20

지난 5일, 4시간에 걸친 산행 끝에 도착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 해발고도 1439m. 천동삼거리에서 600m에 걸친 마의 구간을 거쳐 정상에 닿은 등산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사정없이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이었다. 이날은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파 특보가 발효돼 기온은 영하 20도,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이상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고요한 자연의 정적도 깨부쉈다. 듣던 대로 소백산 칼바람은 무서울 정도였다. 180㎝가 넘는 체격 좋은 남성도 휘청였다. 강추위 속에서 장시간 걸은 탓에 온몸의 영혼이 빠져나간 듯했다.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뒤 주변을 둘러봤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한 폭의 산수화가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주변에 더 높은 산이 없는 덕분에 시야가 막힘 없이 탁 트였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고된 산행에도 매년 또 이곳을 찾는 이유를. 우리나라에서 산마루 둘레로 끝없이 펼쳐진 설원(雪原)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소백산 비로봉에 버금갈 만한 곳은 없을 터였다.
북극 한파에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소백산(小白山)은 ‘작고 흰 산’이라는 뜻이다. 여러 백산(白山) 중에 작고, 겨울이면 눈이 많이 쌓여 하얀 빛을 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슷한 경관을 자랑하는 태백산(太白山)과 비교해보면 소백산 능선이 북동에서 남서 방면으로 길게 펼쳐져 있어 더 탁 트인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겨울 산행은 카멜레온과 같아 날씨 예측이 쉽지 않다. 누구나 온통 눈으로 뒤덮인 새하얀 설경을 기대하지만, 실제 볼 수 있을지는 복불복이다. 산행 초반만 해도 맑은 하늘에 적당히 찬바람이 불어 아름다운 설경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금세 거센 눈보라가 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산이 그날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섣불리 예상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들뜬 마음을 안고 희방사에서 오전 9시부터 일행과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유독 하늘이 눈부시고 청명해 느낌은 좋았다.

1시간반 정도 올랐을까.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바람이 소용돌이 모습을 한 채 온몸을 에워쌌다. 소리는 거센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위로 눈서리가 앉자마자 얼어붙었다. 손끝이 얼어 스틱을 쥔 손은 점점 마비되는 것 같았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강추위였다. 목을 축이고 싶었지만 준비해 간 생수는 이미 얼음이 된 상태였다. 바람이 잠시 쉬어갈 때면 두텁게 쌓인 눈길이 나타났다. 족히 100㎝는 넘게 쌓였다. 사람의 발걸음 흔적이 없는 곳에 발을 잘못 내딛어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대자연 앞에서 한낱 미물이 된 기분이었다.
탁 트인 설경이 압권 … 소백산 막걸리는 덤
아이러니하게도 산행이 힘들어질수록 설경은 더 풍성해지고 아찔해졌다. 해발고도 1000m를 넘어서자 본격적으로 상고대 핀 설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산의 설경이 저마다 매력 있지만, 소백산 설경의 백미는 연화봉과 비로봉 사이 구간이다. 연화봉에 이르는 깔딱고개 구간이 다소 힘들지만, 그 구간만 넘어서면 드넓게 펼쳐진 능선을 볼 수 있다. 멍하니 서서 탁 트인 눈 덮인 능선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일행 모두가 연신 “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현실과 이질감이 드는 이 모습을 오랜시간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실제 모습의 반도 담기지 않았다. 왜 추운 겨울에 굳이 산에 오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하는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이 설경은 직접 눈으로만 담을 수 있다.

등산을 시작한 지 8시간이 지나서야 천동탐방지원센터를 거쳐 주차장에 도착했다. 총 걸은 거리는 14.8㎞. 근처 식당에 들어가 일행과 소백산 막걸리를 한잔 걸쳤다. 난로에 손발을 데우며 한참 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지상으로 내려와 현실세계로 돌아왔지만 아직 마음은 겨울 왕국에 있었다. 그렇게 다음번 산행을 기약했다.

소백산=김채연/정소람 기자/사진=유창재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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